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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조선일보
2009-11-07 00:00:00 조회 : 21



박금산(37)의 소설은 규정된 틀 속에 삶을 가두는 제도와의 갈등 속에서 잉태된다. 7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은 사회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진 거대한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궁합 맞추기를 시작해야 하는 서른 즈음 남성들의 내면을 일곱 개의 프리즘으로 분광해 보여준다. 등장하는 남자들은 백수도 아니고, 물질적인 어려움도 겪지 않지만 고소공포증이나 의처증, 지나치게 작은 키, 동성애 등에서 비롯된 열등의식을 갖고 산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때로는 한없이 치사해지거나 비겁해지는 남자들의 부끄러운 내면이 속속 공개된다.



수록작 〈17층 아래의 나뭇잎-현기증〉의 주인공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동거녀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다. 좌절을 느끼던 남자는 그녀가 여행을 떠난 시기에 옆집 유부남도 사라진 것을 알고 여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처증에 빠진 자신이 못난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정말 바람을 피우는 것일까. 남자는 자신의 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학시절 386 선배들이 생산해 놓은 고상한 이념들을 소비한다. 공산당선언을 읽고, 카페 '쿠바'와 만두가게 '체 게바라'를 드나들며,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멸치국수를 주문한다. 이렇게 고상하게 사는 자신이 어찌 의처증일 수 있겠느냐고 믿지만 그것은 자기최면에 불과할 뿐이다. 벽안의 미녀에게 방 한 칸을 세 준 뒤 로맨스를 상상하다가 막상 그녀가 방문에 자물쇠를 달아버리자 복수에 나서는 노총각(〈이국종 고양이의 방〉), 버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연상의 여인과 불륜을 즐기고 그녀가 외국으로 나가버리자 할 일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청년(〈누가 피리를 부는가〉) 등이 이어진다. 제목에 쓰인 '발가락'은 마음의 구두 속에 꼭꼭 숨겨둔 30대 남성들의 초라한 욕망들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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