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금이 다시 몸을 풀고 있다.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밑단을 떠받쳤던 연기금이 최근 주가가 조정을 받자 다시 매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많은 물량을 쏟아냈던 연기금은 최근 '큰손' 국민연금이 22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의사까지 밝히는 등 다시 주식 매수에 발동을 걸고 있다.
이에 따라 과연 연기금이 어떤 업종·종목에 투자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연기금 매수에 나서나
코스피지수 1600선이 무너진 지난달 29일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736억원어치를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1500억원어치 이상 사들였던 지난 2월 24일 이후 최대 순매수 기록이었다. 이날 외국인은 48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주가가 30포인트나 떨어지며 1600선 근처까지 내려간 전날에도 연기금은 외국인이 매도하는 가운데 292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월별로는 지난 3월 이후 주가가 오름에 따라 꾸준히 매도를 늘렸지만 10월엔 그 규모가 확 줄었다. 지난 8월(2조원)·9월(1조4249억원) 조 단위 매도를 했던 연기금은 10월엔 1400억원대로 매도 규모를 축소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가가 조정을 받자 연기금이 매수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큰손' 국민연금도 매수 채비
실제 270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지난달 29일 22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자금을 굴릴 운용사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고했다. 원래는 중·소형주펀드 운용사 2곳만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주가가 1500대로 내려앉자 추가로 일반 주식형펀드 운용사 4곳에 대한 공고를 함께 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선정 공고가 나면 자금 집행까지 한 달가량 걸리지만, 최근 증시가 흔들리면서 자금 집행이 한결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올 연말 국내 주식 편입비중 목표치는 15.2%인데 8월 말 기준 국내 주식 편입비중은 13.7%로 아직 1.5%(4조원)가량의 매수 여력이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올 연말 국내 주식 편입 목표치는 15.2%지만 위아래로 5%포인트가량을 자율적으로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며 "증시 상황에 따라 이 범위가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수주와 실적 전망 좋은 대형주 위주
연기금이 최근 사들인 종목은 내수주와 실적 전망이 좋은 대형주로 압축된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0월 이후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KB금융(560억원)이었다. 이 외에 SK에너지(207억원)·SK텔레콤(200억원)·호텔신라(149억원)·신세계(105억원) 등 경기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내수주들이 상위에 올랐다.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하이닉스(215억원)의 경우도 수출을 위주로 하는 대형주이지만 4분기 실적이 개선되는 종목으로 분류됐다. 증권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178%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연기금이 많이 판 종목은 4분기 실적이 안 좋을 것으로 예상하는 IT와 최근 업황이 어두운 조선주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현 시장 상황이 내수주 비중을 높이고 수출주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자제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런 트렌드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연기금의 매수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용석 현대증권시황분석팀장은 "연기금이 올해 운영계획상 주식 비중을 급격히 늘릴 상황은 아니다"며 "갑자기 주식 비중을 늘리기보다는 증시 하락세가 커질 경우 비중 맞추기 차원에서 사들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최형석 기자 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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